제 생을 돌아볼 때 자신의 가치관을 꾸준히 지니고 살아 왔던 것 같습니다.
달리 말하면,' 제 멋대로', '자신의 가치에 매몰' 되어서 라고 말 할 수도 있습니다.
사회적 가치에 크게 위배 되지 않았기도 하지만, 가족의 이해와 사랑, 보호가 있었으며,
또 한편 운도 좋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나이를 들고 보니, 소규모이기는 하나 구룹의 책임있는 발언을 해야 하는 위치이기도 하며,
특히 다 자라나 성인이 된 아이들에게 제 가치를 강요 하게 되는 자칫 우를 범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Ideology나 독재등 눈에 보이는 개인의 구속 이 없어졌다 해도,
더 견고하고, 치밀한, 피할 수 없는 사회적 그물망( Social network) 으로 인해
개인적 삶을 추구하기가 전보다 오히려 더 어렵게 되어 버렸습니다.
최근에 새로운 가치의 시각으로 사회를 대하는 실험을 혼자서 해 보았는데,
저와 같은 성향의 사람으로는 두려움, 분노, 슬픔이 상당하게 느껴지는 경험이었습니다.
그러한 마음의 움직임의 존재를 이해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채근 합니다.
제가 스스로 마음을 위안하는 방식 중의 하나가,
나의 마음 깊숙히 들어 있는 제가 쉴수 있는 피난처를 찾는 일입니다.
그안에서 위로 받고 안심을 합니다. -- 헤세의 싯다르타에서 그런 표현을 본 것으로 기억 합니다.
저의 Shelter를 그림으로 표현 하자면 고향의 집입니다. 기린봉이라는 독특한 모양의 산이 있고 그 아랫 마을 이라 해서 인봉리라는 예스런 이름을 가진 동네에 어머니는 우리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 무렵 까지 사셨습니다. 아버지가 한 때 사 모으신 히노데( 일본 철쭉) 가 자라서 꽃밭에 가슴팍 까지 자란 숲을 이루고,꽃이 만발한 계절이면 어머니는 제자들을 불러다 꽃잔치를 하셨고 밤에 마당의 외등을 켜 놓으면, ' 꽃 귀신이 놀고 있다' 라는 어머니의 표현에, 어린시절, 조마조마한 '무서움'이 깃들인 미를 배웠습니다..
언제 부터인가, 그 꽃그늘아래에 어른 주먹 보다 좀 큰 두꺼비 한마리가 살아서 어슬렁 거리며 마당이나 문 밖 골목 까지 나가기도 해서
어머니는 집 나가신 '부처님'을 쫓아가 두손에 고히 모셔 오기도 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