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동 준비라는 어렸을 때 많이 쓰던 단어를 한참 궁리 하다가 찾아 내었습니다.
1. 근무지의 제 방은 근처에 재개발 사업이 차례로 진행 되고 있는 구 도심의 오래된 건물의 3층에 있습니다.
진료실과 별도로 마련해 준 이 구석방은 저에게는 가장 만족스러운 근무조건입니다.
처음 부임해 올 때부터 방풍용 에어켑 비닐로 창문을 덮고 있었는데 먼지가 끼고 반 투명에 가까워
창 밖을 내다 볼 일은 없었습니다. 간 혹, 도무지 경로를 짐작 할 수 없는 매미나 파리 같은 벌레들이
비닐 안의 창틀에 말라 죽어 있어, 그 부분 만 칼로 잘라서 꺼내고는 했습니다.
천성이 무얼 꾸미고 바꾸거나 새로 물건을 사드리는 일에 무심 합니다.
옆 방의 후배가 근처 커튼 가게에서 세일을 한다고, 블라인드를 달면 어떻겠냐고 제안 하여, 좋은 생각.
우선 먼지 낀 방풍 비닐 부터 뜯어 냈습니다.
산뜻한 암막 블라인드를 내리고 라디에이터를 켜놓으니 아늑합니다만
저는 눈 오시는 날에는 블라인드를 위로 바짝 올려 붙이고 잿빛 하늘에서 펄펄 내리는 눈을 감상할 기대로
설레입니다.
2. 올해도 어김 없이 팔십이 훨씬 넘으신 시골의 큰 시누님이 김장 김치를 보내 주셨습니다
' 배추의 속이 차지 않아 ' 한상자 밖에 못 올려 보냈다고 미안해 하십니다.
택 배 상자에 큰 글씨로 ( 성을 뺀) 남편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동생들, 자손들 , 그리고 친척들 까지 다 챙기느라고 상자 마다 이름을 적어 구분해 늘어 놓았을 겁니다.
마치 다정하게 이름을 부르는 음성이 들리는 것 처럼 울컥합니다.
3. 겨울을 좋아 하는 이유가, 단지 그 계절에 태어 났다는 것 만으로 알았는데.
추위를 피하여 아늑한 동굴에 숨어 들어 가듯, 그 부산하고 들뜨는 월동 준비의 기억 때문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물가에 산처럼 쌓여 있는 배추, 잔치 같았던 김장 날의 이웃 아주머니들, 동무들 다 같이 하는 식사, 감따서 항아리에 짚 놓아가며 갈무리 , 연탄 수백장, 창호지 새로 발라 마당 담벼락에 세워 말리던 문짝들, 그리고 새로 사주신 오버코트와 털신. 몇 다라이나 쒀 서 장독대 위에 식힌 동지 팥죽을 , 이불 뒤집어 쓰고 먹던일... 그리운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