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일학년 때 친구들과 시를 한 백편쯤 외우자고 약속하고 수첩에 적어 읊조리고 다닌적이 있습니다.
커녕, 몇 십편 하다 말았겠지만,
서당에서 천자문을 무조건 외우는 것 처럼, 시를 짓는 다는 것, 시적인 정서와 시인의 감성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었을 겁니다.
"...아예 애련에 물들지 않고
희로에 움직이지 않고....
억년 비정의 함묵에...
두쪽에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유치환 시인의 바위를 연상하며 드로잉 해봅니다.
시선은 아무데도 고정 되어 있지 않습니다. 감정이 어떤 것인지 모호합니다.
그런 고전적인 시 말고,
최근에 본 마음에 드는 시 두편 포스트 합니다.
야채사 野採史
김경미
고구마, 가지 같은 야채들도 애초에는
꽃이었다 한다.
입이나 줄기가 유독 인간 입에 달디단 바람에
꽃에서 야채가 되었다고 한다.
달지 않으면 오늘날 호박이며 양파들도
장미꽃처럼 꽃가게를 채우고 세레나데가 되고
검은 영정 앞에 국화꽃 대신 감자 수북 했겠다.
사막도 애초에는 오아시스였다고 한다.
아니 오아시스가 원래 사막이었다던가.
그게 아니라 낙타가 원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사람이 원래 낙타였는데팔다리가 워낙 맛있다보니
사람이 되었다는 학설도있다.
여하튼 당신도 애초에는 나였다.
내가 원래 당신에게서 갈라져나왔던가."
그네
문동만
아직 누군가의 몸이 떠나지 않은 그네,
그 반동 그대로 앉는다.
그사람처럼 흔들린다.
흔들리는 것의 중심은 흔들림.
흔들림이야말로 결연한 사유의 진동
누군가 먼저 흔들렸으므로
만졌던 쇠줄조차 따뜻하다.
별 빛도 흔들리며 곧은 것이다. 여기 오는 동안
무한대의 굴절과 저항을 견디며
그렇게 흔들렸던 세월
흔들리며 발열하는 사랑
아직 누군가의 몸이 떠나지 않은 그네
누군가의 몸이 다시 앓는 그네"
시인은 사물을 바라보면서 감정의 이입을 할 줄 압니다. 그래서 그 안에 들어 있는
정신과 교감하고 합일 할 수 있습니다.
현대의 시인도 다를바 없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사물의 종류가 달라진 것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