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기억의 맨 앞쪽에서는,
앞집 낮으막한 초가지붕 너머로 복숭아꽃 피는 과수원 동산과 , 병풍처럼 둘러선 기린봉이 마루에서 보였습니다.
집밖에는 공동 우물이 있어 동네 사람들은 대부분 그곳에서 물을 길어다 먹고 빨래도 했습니다.
우물이 마르는 가뭄때에는 동네에 제일 큰 부잣집, 깊은 우물에서 마르지 않는 샘물을 길어다 먹고는 했습니다.
뒷 길로 조금 더 가면 소나무들이 삐뚜루 서있고, 비석도 없는 봉분들이 듬성듬성 놓여있는 뒷동산이 있습니다.
작은 논, 밭에서 메뚜기도 잡고 나물 캐러도 다녔습니다.
행정구역상 도시의 한 동네 였기 때문에 ,60년대 후반들어서서 빠른 속도로 개발 되어갔습니다.
동산들은 불도져가 와서 다 밀어 버리고 시멘트 길과, 고만고만한 개량 주택들이 들어 섰습니다.
저는, 다른길을 좋아 했습니다.
집에 어머니가 안계셨기 때문에 늦는다고 걱정하고 채근 하는 사람이 없어,
온갖 상상의 이야기를 지어내면서, 새로 난 길들을 이곳 저곳 겁도 없이 쏘다녔습니다.
꿈을 꾸었던 것 처럼 그길이 생각납니다.
어린 시절에 놀던 그 푸른 동산이 황토흙이 들어난 벌건 흙길로 변했고,
나무도 다 잘려 나간 터이며 집들도 들어서기 전이라, 아래에서 올려다 보면 ,지평선 처럼 한없이 너른 파란 하늘이 언덕위에 얹혀있었습니다.
고개넘어 그 아래에는 전혀 모르는 세상이 있을 것 같던 낯설음.
한고개 넘어서, 두고개 넘어서, ... 동무들과 손잡고, 웅크리고 있던 여우역활의 술래가 왁하며 일어서는 순간을
조마조마 기다리면서 한걸음씩 나아갑니다.
평생 고개 넘기를 하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고개너머에 무엇이 기다릴 지 다 아는 것 같았습니다.
아무런 의심도 없이 그 고개를 넘어 갔습니다.
지금은, 고개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그저 올라 섭니다.
겨우 한고개 넘었다 하고 또 다른 고개를 향해 오릅니다.
남들이 다 하는 것 처럼, 아버지, 어머니 넘어 가신 그 고갯길을 ... 따라 갑니다.
저 계단의 끝에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불 빛이 새어 나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