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때 저를 돌보아 주던 분이 계셨습니다.
어머니의 먼 친척 동생뻘인데, 우리는 언니라고 불렀습니다. 남녀 형제 공히.
부모님 모두 잔소리를 안하시던 분들이라, 우리들의 자기 관리는 엉망이어서
많은 식구들이 벌려놓은 뒤치닥거리가 만만치 않아서, 항상 불평을 입에 달고 사셨습니다.
노처녀인데다, 성질을 잘 부려서, 장난기가 많았던 막내오빠와 잘 싸웠고,
그러나 우리의 일들을 낱낱히 기억 하여, 나중에 다 장성 한 후 배우자들을 데려 왔을때,
하나씩 풀어 놓기도 하셨습니다.
이 분이 가장 즐기던 일이 하루 집안 일 다 마치고, 밤에 영화를 보러 다니는 것이 었습니다.
그때 항상 나를 동반 하였고, 애들이 보기에는 적당치 않은 영화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한참 한국영화의 전성기, 여배우 트로이카가 겹치기 출연하던 영화들인데,
철철 울기도 하고, 악역 배우에게는 실제인 것처럼 분노를 터뜨리거나 미워 했습니다.
글을 읽으줄 모르면서도, 영화의 내용은 줄줄이 꿰어 다음날은 나를 앉혀놓고 해설을 했고
때로는 남녀 상열에 관한 이야기도 적나라하게 하셔서 이른 성교육까지 담당하신 셈입니다.
내가 조금 자라 따라 다니기를 거부 했을때는 많이 서운해 하시면서, 화도 내셨습니다.
이렇게 제 영화보기가 시작 되었었습니다.
늦은 나이에 한 남자를 만나 결혼 하셨는데, 그리 행복 하지 못하셨고, 자손 없이 사별 하시어,
그 후에도 집안에 대소사에 다 참석 하셔서 친정 처럼 드나드셨습니다.
내가 큰아이를 낳아 수련을 끝낼 동안 어머니에게 맡겼는데, 그때도 얼마나 아이를 예뻐하는지,
아마 나 어릴 때도 저리 정을 주었겠구나 알 수 있었습니다.
어느날, 영문도 모르게 갑자기 돌아가셨는데, 어머니는 그분의 사진을 벽에 붙여놓고, 극락 왕생을 비셨습니다.
죄 안 짓고, 평생 어린애 처럼 순수하게 살았기 때문에 분명 좋은 곳에 가셨을 거라고, 말씀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