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약한 사람들에게 구원의 처로 종교를 찾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2-30년전 만해도 종교와 정신과학은 서로 대립각에서 환자의 상태를 대하고 있었으나
최근에는 성직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심각한 정신병적인 문제가 발생할 때에는 신도에게 치료를 권하는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물론 정신과 의사들도, 환자의 종교적 배경을 편견없이 받아 들이려고 노력하고 있구요,
최근에 입원한 Y씨.
우리세대의 이상의 여자들이 많이 그러한데, 어려운 시절에, 많은 식솔 중에, 여자아이로 태어나,
적절한 보살핌이나 사랑 대신에, 희생을 강요당하여, 그런 위치로 정체성이 결정이 되고,
그런 억눌린 감정들을 받아주고 자아를 인정 받는 일이 , 종교적 행위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Y씨의 경우입니다.
열살이전부터 집안일에 매달려 남자 형제 들에 밀려 공부도 할 수 없었고, 그러나 그녀의 타고난 아름다운 목소리가,
성가를 부르면서 교회에 헌신 하는 일로 칭송을 받았으며 삶의 보람과 이유가 되던 중에,
거듭되는 고행과 같은 기도중에, 일시적인 정신병적 증상이 나타나,
교회의 분들에 설득되어 입원하셨습니다.
우리가 그녀에게 세운 치료 계획은, 평생을 종교의 울타리에서 만들어진 인격을 많이 훼손 시키지 않으면서
폐쇄적인 그녀에게 다른 세계와 타인을 이해하고 어울리는기회를 제공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병동의 불쌍한 영혼들을 도와주라는 신의 뜻이었다고 자신의 입원을 마지못해 수용하기는 하지만
그러나 종교적인 고민을 하고 있는 몇 환자와는 뜻이 통하면서, 긍정적 영향을 주고 있음을,
참견하지 않고 바라보고 있습니다.
엘리자베스 길버트는, 세계각지에서 다른 종교와 직종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있는 아쉴람에서의 기도생활을 시작합니다.
그 명상센타에 들어가는 일은 엄격한 심사를 거친답니다. 보통의 감정과 지적 판단력이 있어야 하며 타인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능력을 요구하고
심각한 감정적 트라우마가 적어도 육개월 이상은 없었어야 하며 묵언의명상을 수시간 동안 견딜 수 있을 정도로 강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합니다.
진실로 자아가 무엇인가를 깨우치는 과정이지, 어금니를 꽉 다문 입을 강제로 벌려 먹여주는 곳이 아니랍니다.
실은 우리가 하는 일이 그러합니다. 스스로 마음을 열고 , 의지를 갖도록 도와주는 거기까지 의 역활입니다.
진실로 고난을 받아들이고 감내하며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일은, 아마 종교적 도움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진료 받으러 온 언니 따라 왔다가 저에게 붙들린 콩쥐의 간절한 눈빛. 언제 오시나, 어딜 가셨나...
잠깐의 헤어짐이지만 주인이 다시 보일 때의 행복감은 너무나도 열렬합니다.
그리고 마음이가 오랜만에 멋진 포즈를 보여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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