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의 삶은 주고 받는 삶입니다. .. 그 주고 받는 주체와 객체 사이에 아무리 다가서도 얇은 틈이 생깁니다
..뒤샹은 이것을 앵프라맹스 inframince라 불렀습니다. infra; 기반 , 하부, mince; 얇은 것, 마른 것
즉 눈으로 식별 할 수 없는 초 박형의 상태...이것은 구체적 상태가 아니라 일종의 형용사 ..." 랍니다
옷이 스치는 휘파람 소리, 담배 연기를 내뿜을 때 입술에도 배어드는 그 냄새,의자에 앉을 때의 미지근한 촉감
을 그 예로 듭니다
이어령 님의 지성에서 영성으로 에서 따온 말입니다.
두 개체사이에 끝없이 수렴 할 뿐 절대로 완전한 일체가 될 수 없는, 절대 고독
을 메워 주는 그 공간에서 일어나는 사랑을 사람들은 종교에서 찾는 것 같습니다.
저는 어려서 종교적 문화를 온전히 느낄 수는 없었던 환경에서 양육이 되었기 때문에,
살아가면서 자연 스럽게 갈구하게 되는 종교에 대한 심상을 타인의 종교 입문의 수기에서 찾습니다.
이어령님은 여섯살 무렵 논둑길에서 굴렁쇠를 굴리다가 갑자기 떠오른 죽음에 대한 자각.
"귀가 멍멍하도록 고요한 대낮, 허공, 새하얀 햇빛, 뺨을 타고 흘러 내리던 눈물
아무리 힘껏 잡아도 새어나가는 눈물 ..." 메멘토 모리 를 그 시초로 말합니다.
저도 그 무렵이었던 것 같습니다. 갑자기 주변의 모든 사물과 나 와의 관계,
뭐라 표현 할 수 없는 , 그 거리감 그 방안에서 마치 무한한 공간에 던져져 버린 듯한
다행히도 곧 그 독특한 느낌을 망각하고 성장하게 되었습니다만...
그다지 예민한 편은 아니라, 인간과의 관계에도 그 간격의 존재를 당연히 받아 들이고
절절한 욕구가 없어서, - 말하자면 종교적 예지와는 거리가 멀어- 보통의 삶을 살 수 있었다 고 봅니다,
그러나 마치 발효하는 빵이 부풀면서 구멍이 뻥뻥 뚫리는 것 처럼
實質은 줄어 들고 無의 공간만 커지는
점차 그 허공이 아프게 느껴집니다. .. 어떤식으로 전개 될 지는 모르나,
아마 죽는 날까지 붙잡고 가야할 화두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또 한분, 경직되고 회색의 시대에, 자유로운 젊음의 표상으로, 동경하던 최인호님의 부고를 들었습니다.
젊은 시절에 그랬던 것과 같은 솔직하고 자유로운 의문을 거침없이, 던지면서 종교에 다가서던 그의 글들이
제 종교입문의 과정중에 많이 삽입 되었었습니다.
출근 길 목에 부처님 조상하는 공장이 있습니다. 그리 사업이 잘 되지는 않는지 문 닫고 쉬는 날이 많고
만들어 놓은 상 들 조차 잡초속에서 방치 되어 있으나,
어쩐지 호박넝굴과 꽃들에 둘러 쌓인 부처님이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합장.
가을꽃들. 시력이 약해져서 가까이 다가가야 잘 보입니다.
생의 모든 현상은 꿈같고 환상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같고 반짝이는 이슬 같고 번갯불 같으니 그대는 마땅히 그와 같이 명상해야 하리라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金鋼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