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간식이 옥수수입니다.
막 수확해서 나올 때에는 거의 매일 찐 옥수수를 밤참으로 내놓아도 물리치지를 않습니다.
그렇다고 저는 제철에 대량 구매해서 갈무리 해놓는 꼼꼼한 살림꾼이 아니라,
늦가을 무렵 수퍼마켓에 더이상 들여놓지 않으면 , 다음 수확철 까지 옥수수간식은 끝이 납니다.
어제. 초봄 추위로 손이 시리던 저녁. 집에 가는길에 큰길에서 밀려나 골목으로 들어온 포장마차 에 힐끗,
찐 옥수수가 김 올린 솥위에 데워져 있는 것이 보입니다.
반갑게, 한봉지 드릴까요? 하는데, 두봉지에 천원씩 싸게 준다기에 한꺼번에 네봉지를 주문합니다.
부부인 듯, 나이 지긋해 보이는 두 분, 화색이 돌며 서두릅니다.
작은 검정 비닐 봉투에 나누어 담다가, 잠깐 멈추면서 큰 봉투에 드릴까요? 묻습니다.
대뜸. 아내분. 아니, 무거워요, 작은 봉투로 두개 나누어 들고 가는 게 나아요. 큰 진리라도 되는 듯, 단호한 태도입니다.
사람좋은 미소를 잠시 두고, 어쩔 줄 모르는, 그 남자분에게,
" 사모님 말 들으세요, 여자말 들어 손해 안나세요" 하니, 두분 크게 웃습니다.
마차의 포장을 걷으며 나와 한참동안 제 얼굴에도 아마 미소가 남아 있었을 겁니다.
강의 준비하느라고 몇칠새 늦게 귀가하는 남편이 , 샤워마치고 자리를 잡자 마자, 옥수수 그릇을 끌어 당깁니다.
마른 나무 가지처럼, 바람이 숭숭 들어 말라 버린 무우처럼, 몸은 쇠잔해집니다.
욕심이나 갈망, 분함, 성마름, 초조와 불안 조차도 조금씩 새어 나갑니다.
먹고 싶고 갖고 싶은 것도 예전 만큼 많지가 않습니다.
삶은 수숫대. 그 작은 붉은 알갱이를 한톨 한톨 까 먹던 깨북장이 어린 시절이 문득 떠오릅니다.,
그 순수한 기쁨, 만족감이 아련히... 그립습니다.
숲 화실의 세원이 그림을 빌립니다. 화실의 아이들은 자주 누드를 그립니다.
왜 누드를 그리는가? 라는 질문이 나왔던 적이 있습니다. 자발적인, 자연스러운 표현으로서의 누드라면,
자기애 自己愛의 scene 일겁니다.타자나 외계를 인식하기 이전의 오로지 집중되는 자기(self) .
고요하고 따뜻하며잔잔한 희열, 아무런 장애가 없는, 거침이 없는 , 순수한 에너지.
이 그림은 눈을 가늘게 뜨고 촛점을 흐리며 바라보면, 한 송이 분홍 꽃처럼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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