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입니다. 아파트 화단에 동백과 철쭉이 어울려 피어있습니다.
올해는 봄이 깁니다.
겨울 지나자 금새 날이 더워져 사계절의 구분이 없어지는 것 같다고 우려하던 호들갑이 최근 몇년동안 그랬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방송에서 , 평생 어렵게 살아온 어촌의 한 할머니가 자기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표정이 밝습니다. 아침에 눈뜨고 들일을 하러 나오는 일상이 즐겁답니다.
간혹 안부를 물어오는 친구들이 직장을 그만 두고 쉬고 있다고 답하면,
" 힘들었겠다" 는 반응을 보입니다. 워낙 오래 일을 했고 바쁘게 지내다보니, 그냥 쉬고 있는 모습이 낯선가 봅니다.
하기야 저 조차도 잠시만 쉬었다가 다시 일을 다시 하는 것이 당연하다가 생각했습니다만,
점차 이 작은 일상들이 편안하고, 익숙해 집니다.
매일 일과표를 짜고 , 중요한 볼일이란, 주간계획표에 한두가지 밖에 없습니다. - 실은 그저 늦지 않게 입금해야 하거나,
오랜만에 누구를 만난다든가, 꼭 해야 하는 일도 아닙니다.
소소한, 얕은, 힘이 들어가지 않는, 느슨한 일들입니다.
오래 어떤 일을 하다가 보면, 그일에 대한 사명감 같은, 그 일에서 나를 제외하고는 상상이 안가는 상태가 되어버립니다.
그 일과 연관되어 내 생활 전반은 정교하게 얽히어, 그만 두는 동시에 많은 일들이 얼그러져 버리는- 버릴 것 같은 두려움으로,
그일을 놓지 못합니다. 그렇게 내가 만든 나의 모습에 중독이 되어, 그 모습에 맞게 더욱 나를 만들어 가고..그러다 보면
진짜 나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알수 없게 됩니다.
아침에,가족 챙기고, 집안일 하고, 책 보고 신문 보고, 드라마 보고, 글쓰고 그림그리는 일들을 기대하며 일어납니다.
신나는 , 열렬함, 흥분이 배제된 잔잔한 기쁨 같은 것이 이 작은 일상에서 느껴집니다.
어제와 같이 오늘도 무사히 새날을 무언가로 채울 수 있는 타인에게는 규정 지을 수 없다해도,
스스로 아주 잘 이해가 되는 나의 모습입니다.
물론 아직도 사회적으로 쓸모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섣부르게 타인을 의식하고 인정 받으려는 욕구가 남아 있다면,
지지도 못할 책임과 의례적인 죄책감으로 스스로를 옭아 매는 생활로 돌아 갈 것입니다.
다시 고삐를 늦춥니다.
더 천천히, 더 음미하면서, 더 자연스러운, 그렇게 걸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내 그림자를 놓치지 않으면서.
때로는 경쾌하게, 한번씩은 멈추었다가 , 신중한 걸음으로.. 조금씩 바꾸어가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