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생각이 나는데, 아마 psychiatrist 의 이전 , 제가 처음으로 돌보았던 대상은 나의 아버지 인 것 같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다닐 무렵 아버지가 혈압이 잘 조절이 안되었는데,
웬지 건강염려증상이 생기셔서 반복적으로 체크하고 안절부절 못하셨습니다.
아버지를 위로하고, 한 밤중에 약국에 뛰어 갔다 오고, 제가 했습니다.
나중에는 저에게 많이 의존 하셨는데, 당시 어머니는 학교일에 매달리시느라,
그 끝없는 컴플레인을 받아주지 못하셨습니다.
그후 다시 이성적인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 오시기는 했는데,
아버지의 마음이 보통은 어떠셨을 까, 겉으로 보기에는
참으로 인내하고 보편적이며 논리정연하게 삶의 어려운 점들을 직면하고 해결해 나가시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대학에 다닐 때는 막내딸을 동반하고 가까운 여기저기 나들이 다니시기를 즐기셨지만
어머니처럼, 자신의 생각을, 감정을 다 말해주지는 않으시고 대체로 조용히, 묵묵히
앞장서 걷기만 하셨지만,, 그러나, 편안하고 마음이 소통하는 다정함을 느껴지던, 아득히 먼 그리운 시절...
저희가족이 참여하는 인터넷 카페가 있습니다. 각각 보관하고있는 사진이나 추억담들을 올리는데,
오빠가 아주 옛날에 아버지로부터 받은 편지를 내놓으셨습니다.
" 0 兒야 삶의 폭을 넓게 갖자구나...아빠는 앞으로 오년이면 환갑이 된다..어느집안을 막론하고 따지고 보면 걱정 근심이 없는 집이 없느니라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자기만 걱정근심을 짊어지고 있는 것으로 착각한다, 내 일생만 보더라도 눈 眼에서 오는 悲哀,
동생들을 가르치느라고 오는 살림의 쪼들림, 너희들을 가르치는데서 오는 苦生, 너희들에게 주는 슬픔,
이런 것들이 아빠의 의지를 좌절 시키지는 못했고 언제나 기쁨을 찾으려고 했고, 찾았으며, 지금도 변함이 없다.
오늘도 내일도 너희들의 얼굴에서 웃음을 얻으려하고 엄마가 슬퍼하면 나도 몇배이상 슬퍼진다, 나혼자서만 풀어야 하니까...
네게 마음이 걸리는 것이 있거들랑 아빠에게 풀어다오, 내 어찌 너를 모를소냐?...
兒야 하늘은 넓고 바다는 깊다...
...아빠는 엎어져서 끼어 가는 일이 있더라도 ㅈ兒 란 놈 결혼 할 때가지는 살아야 겠는데 지금 같아서는 자신이 없구나,
엄마의 즐거운 표정 만이 내 생명을 연장시킬 것이다..
아니다 먹구름이 지나면 밝은 날이 오겠지, 엄마의 심화가 오늘의 가을 날처럼 활짝 밝아 지겠지,
내가 그렇게 복이 없는 사람은 아니니 말이다..
0兒에게 언제나 즐거움을 주옵소서"
..."네 말 마따나 우리집은 家風이 없다 그래서 질서가 없고 엉성한 구석이 있긴 하다 그러나 너희들이 잘못되었단 말이냐?
가풍이 있는 집 보다 잘 못 되었다고 생각지 않는다. 모두다 용기있게 자기의 길을 걷고 있다.
자기의 일을 자기가 찾지 못하고 뒷전이나 보는 어리석은 녀석은 하나도 없다 소위 망나니도 없다.
暴君의 가장을 중심으로 가장이 생각하는 틀 속에다 가족을 묶어놓고 우쭐대는게 가풍이다
이러한 保受性속에서는 발전이 없다 원래 자유주의 정책이란 아무런 정책을 쓰지 않는게 그 정책이다.
이런정책을 쓰는 나라도 없고 썼다가는 망할 것이 뻔하지만 가정에서는, 특히 우리가정에서는 정책이 실패하지 않았다....
인생을 멋지게 !
이름의 한자를 따서 兒를 붙여 자식들을 지칭했습니다.
결혼이나 시킬 수 있을까 걱정하시는 兒가 저이고,( 따져보니 제가 중학교 다닐때입니다) 저희 두째가 태어난, 이틀 후에 가셨습니다...
아버지가 굴리시던 단주입니다.
큰 아이 돌사진 촬영, 뒤에서 붙들고 계시는 손이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