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의 알카트래즈 에 가본 적이 있습니다. 영화 더 록의 배경이고, 지금은 폐쇄된 감옥이며 관광시설입니다.
오래전이라 세세한 기억은 없지만, 인생의 공유된 경험이 없이는 별 감흥을 느끼지는 못했습니다.
십대의 초반이었던 아이들은 어떠 했을지, 쇼비니어 샵에서, 70년대 클린트 이스트 우드 주연의 영화 비디오 테이프를 살까 잠시 망설였던 것,
작은 운동장, 탈출에 성공했다는 죄수들의 수도관 벽틈으로의 탈출 경로, 다시 배를 타고 돌아 나오는 길에, 하늘에 떠다니며,
관광객의 빵 부수러기를 얻어 먹으려고 머리 바로 위까지 달겨드는 갈매기들의 선회. 붙잡을 수 없었던 모호한 감상이었습니다.
스티븐 킹 원작의 영화 쇼생크 리뎀프션 shawshank redemption.
탈출이라는 번역은 영화의 의미를 축소 시키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더 적당한 말을 찾기는 어렵지만.
억울한 누명을 쓴 브라이트한 은행가의 치밀하고도 끈기있는 탈출 성공으로 만 보기에는 그 영화의 남다른 감흥을 다 설명하기 어려울 듯 합니다.
쇼생크라는 감옥의 의미는 무엇일까,
앤디는 유능한 은행가로 아름다운 아내와 누리는 안락한 삶을 성공이라고 믿어왔으며 그렇게 살 수 있는 한 평생을 의심치 않았으나,
순식간에 뒤엉켜 버리면서 쇼생크에 갇혀 이십년의 세월을 보내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스스로를 감옥에 가두어 버렸으며- 아내의 불륜에 대한 질투, 분노, 살해충동, - 쇼생크는 벗어나지 못하는 그의 마음일 수도 있습니다.
그곳에서 자유에 대해 생각합니다.
뜨거운 태양아래서의 노동 후 마시는 맥주 한잔, 아름다운 모차르트의 선율, 젊은 날, 들판, 떡갈나무아래에서 여인에게 한 사랑의 고백.
그는 자포자기, 무자비하고 야만적인 힘의 굴레를 벗어나 자유를 얻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 꿈꾸고 실행에 옮깁니다.
앤딩에서 푸른 바다가 펼쳐진, 뱃사장, 한가로이 보트를 수선하는 앤디와,
감격에 차 그에게 접근하는 레드의 표정으로, 삶의 구속으로 부터 벗어나 자유를 쟁취하는 순간의 환희를
Redemption으로 표현 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아침, 뜨거운 여름 한 낮을 예고하는 강한 햇빛에 ,강물의 수면 에 반사하여 춤추는 빛의 산란을 보면서,
잠깐의 일탈로 그것이 자유라고 믿는 소심한 순응으로 부터 벗어나
삶 전체를 바꾸어 버리는 진정 자유로운 삶을 꿈 꿀 수는 없을 까...
그랬습니다.
누군가가 버린 화분이 다 말라가는 것을 , 좀 자신이 없지만 방으로 가져와 창가에 두고 물 주고 다듬어 주니,
이렇게 예쁜 꽃을 피웠습니다. 가만 들여 다 봅니다. 한 참 지나면, 그속에 자연이 보입니다.
자유의 은유인 ....야생의 새를 키워 길들이는 장기 복역수 부룩스가 그랬던 것 처럼.
희망은 가장 좋은 것이랍니다. 그리고 좋은 것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The Hope is good thing, Maybe the best of things. And no good thing ever died.
왜냐면 인간은 살아 있는한, 그것을 꺼뜨리지 않도록, 줄곧 노력을 하게 될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