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화실의 작업 테이블에는, 바닷가로 여행을 다녀온 숲 주인의 채집품들이 올려져 있었습니다.
예술가의 심미안은 , 숲人들에게 전수 되어, 인스피레이션 을 얻고, 작품의 주제가 됩니다.
특이한 모습을 한 바다 생물의 미이라가 그 중에 있었습니다.
몸통에는 가시가 온통 박히고,눈은 부리부리 한게, 감정이 살아 있는 듯 합니다.
입 모양은 새의 부리 처럼 생겼습니다.
멸종된 고생물이냐, 아니면, 방사능 오염물질에 의해 변형된 괴 생물 체냐,, 설왕설래...
SNS 에 올려 보자고 결론이 났습니다. 혹시, NASA나, CIA같은 비밀 정보국으로 부터 은밀한 연락이 오는 것은 아닌가,
돈많은 수집가로 부터 넘기라는 제안이 오는 것은 아니냐,,,
몇시간도 되지 않아, 주루룩 달린 댓글에는, 흔히 볼 수 있는 가시복의 시체라고 합니다.
그러나 상당수는 처음 본 이 半魚半鳥 같은 생물에 신기해 합니다.
현대의 미술 시장에서는, 작가 개인의 재능이나 걸작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광대한 광장에서, 얼마나 공감 할 수 있는가, 감동과 행복감을 주 가,이해가능한가, 어떤 의미가 있는가 라는 요소들로 작품은 관심을 받게 됩니다. 그것은 작가가 작업하는이유와 목적이기도 합니다.
현란한 수사로 작품을 분석하는 일이 더이상 흥미를 끌지 못한다면 , 왜 예술가들은, 여전히 학문을 동반해야 하는가,
인간이 존재하는 한, 한계와 고뇌, 생과사에 대한 의문은 계속 될 것이며 ,
예술은 혼자서 , 고독하게, 인간이라는 무궁무진한 신비의 존재를 (자기자신이라는 재료를 가지고) 탐구하는 대단히 주관적인 정신 행위입니다. 문학과 역사와 철학을 동반 하는 일은 예술의 길잡이이기도 하지만 ,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걷게 해주는 힘을 줍니다. 가장 주관적인 자아를 발견 하여 창의적인 작품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인내하고 기다리며 신뢰를 갖고 희망을 놓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혹시 작가가 되지 않더라도, 예술을 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삶에 큰 무기이며 선물이 됩니다.
그무렵 저의 단상입니다.
8월
숲에 오는 아이들은 아직 나이가 어린데도 '생각'을 합니다.
책에서 읽은 것, 누구에게서 들은 것, 학습 된것이 아닌, 자기의 이야기를 할 줄 압니다.
어느날은 보편적인 도덕, 윤리에 반하는 작품들이 과연 허용될 수 있는가, 왜인가, 라 열띤 토론을 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