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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torana3 2020. 1. 30. 11:15

오래전 박완서 선생님의 단편소설 제목입니다.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데, 그분의 탁월한  언어의 선택 덕분에 제목이라도 기억 납습니다.

대부분 그의 ( 자전적 요소가 많은) 다른 소설에서 처럼 경우 바르고 올곧고 자의식이 강한  인물들이 내뱉는 때로 신랄한 사회 비판적인 주제 였을 듯 합니다.


부끄러움이란 즉 Shame은 동아시아 문명사회의 중요한 감정 중의 하나입니다.

정신의학의 수련 초기에, 서양문화의 Guilty와  차이점을 비교해서 토론 했던 기억이 많습니다.

과학적이며 논리적인 학문은 범주를 나누고 용어를 명확히 정의 내리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서양의 택스트에서 예시를 드는 신경증의 근간을 이루는 불안은  Guilty에 있다고 설명합니다.

기독교 문명의 원죄 의식이 그 기원이며, 동양에서는   농경 사회의 원시 씨족내의 관계에서

집단 규율을  유지하기 위해 수치심이라는 정서가 자연 발생 되어 집단적 무의식을 구축 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Guilty 라는 감정을 느끼기는 쉽지 않아서, 그 길티가 없는 것이 길티한 것 같은.. 그런 마음이 들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수치심은, 여러방식으로 나타납니다.

숨길 수있고 드러나지 않으면, 불안이나 불쾌함을 겪지 않을 수도 있는 반면 ( 길티와 다른 점입니다)

그대신 집단이나 관계에서 수치심을 단죄의 도구로 사용하기도 하는데,  강력한 공포와 슬픔의 감정을 감당하기 어려워 인격을 와해 시키기도 합니다.

그밖에도 체면이라는 정서와도 연결되어, 자아경계가 불확실한 ( 실은 자아ego라는 개념도 우리는 좀 모호합니다) 

개인들은 남과의 비교로 열등감, 지나친 자기비하등 감정적인 격랑을 일으키며 회피avoid, 부정denial, 무효undoing 등의 정서적 행동이 나타납니다.


어쩐지 길티가 세임보다 고급 정서인 것처럼 인식되었던 것은, 서양 학문에 경도되어 있던 젊은 날의 오류가 아닌가 싶습니다.

수치심을 아는 것은, 집단의 공존의 수준 높은  정신행동입니다.

 타인이나 약자에 대한 측은 지심과, 비윤리를 단호히 거부 할 수 있는 할수 있는 용기이며,

고귀한 인격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감을 유지하여 마음의 평정을 얻는 매우 성숙한 정서입니다.


수치심을 인정하지 않고  복수를 한다든가,  무소불위의 힘으로 부끄러움을 덮으려는 승자가  결코 행복하지 않습니다.

부끄러움을 모른 다는 것은 , 천둥 벌거숭이의 , 어린애나 바보, 자력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상태에 있을 때만 , 허용 될 수 있습니다.



언제부터 그렇게 부끄러움을 모르는, 어른들이 많아졌는지...

지금 아이들에게 부끄러움을 지금 처럼 가르치지 않아도 되는 것인지...








                                                                                     아침 나절, 어디에서들 밤을 지새고 나타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