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을 세우는것에 비해 실천력이 부족합니다.
즉흥적이며 비현실적인 아이디어가 자주 팝핑되어 애당초 끝까지 해내기는 무리인 경우가 많은 것이 문제 일겁니다.
그런 성향이라, 하고 싶은 일이 백수의 여백을 차고도 넘칩니다.
대부분은 정적인 일입니다. 정보가 넘치다 보니, 어떤 아이템을 가지고 시작 했다가도 자꾸 곁가지를 치는 바람에
읽으려고 꺼내놓은 책, 프린트, 오려놓은 신문, 찜해놓은 영화, 드라마, 가 자꾸 쌓여갑니다.
점점 더 기억이 명료하지 않고 감각도 둔해지며 집중도 잘 못합니다.
더 늦기전에 살아온 일 모든 생각과 감정의 양태, 외계를 대하는 방식에 대한 점검하고
심플하면서도 적용가능한, 명료한 인격의 형태를 갖추고 익숙해 져야 할 것입니다.
가장 큰 관심과 주제는 영적인 것, 종교에 관한 것입니다.
일종의" 마음의 준비'입니다.
이런 생각들이 제 마음속에 자리잡아 갑니다.
1. 신은 존재 하는 것이 맞다. 신이 존재해야만 보잘 것 없는, 하잘 것 없는 그 생물들, 무생물들이
또는 한 사람이 행하는 좋거나 나쁘거나 선하거나 악하거나, 실수하거나 두렵고 슬프고 절망하는 일들 조차 신의 이름 아래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2. 그러나 신의 질서는 인간의 질서와는 다르다. 신은 인간의 질서에 관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질서는 분명히 있다. 인간은 그것을 알아 내기 위해 과학적 사실들을 탐구 했고
훨씬 이전부터 인간의 말로 그 질서를 설명했다. 내재적으로 심어져 있는 그 질서를 따르려는 욕구가 있으며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해 내었다. 종교고 철학이며 여러가지 은유, 사랑, 믿음, 용서와 헌신, 희망과 같은 말이 그것이다.
3. 용서 하는 일보다 어려운 것은 용서를 비는 일이다.
대단한 믿음이 있지 않고서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용서를 청하기는 쉽지 않다
진정으로 용서를 빌때는 누구라도 용서를 할 것이다
예수나 석가가 처음 인간을 초월한 전 우주적인 힘과 질서를 설파 할 당시에는 인간의 존재는 비참 하였을 겁니다.
그런 민중에게 전하는 연민과 사랑으로 다른 우주적 질서를 가르쳐 고통을 이겨낼 힘과 희망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당시와 지금은 사고의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인간의 정신도, 질서도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공해가 하늘을 가리고, 콘크리트 거대한 벽이 자연의 변화를 감지 할 수 없도록 막아 서 버렸습니다.
인간은 자신들이 이루어 낸 성취에 도취되어 오만해져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 한정된 감각의 세계로 부터 튀어 나가게 될 때는 그 존재의 사라짐과 허망함을 이해할 다른 질서를 찾아야만 합니다.
최근에 얻은 팁입니다.
"..어떤 감정이든 그것에 초연 할 수는 없어... 감정에 온전히 자신을 던져서 스스로 그안에 빠져 들도록 내버려 두면 ..
그 감정을 제대로 경험 할 수 있게 된다..그르고 나서 그 감정에서 벗어난다.." ..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 자신의 상황에 완전히 빠져 들어가야 한다는 말인 듯 합니다. 회피 하지 말고, 우회하지 말고.
" 기쁘지 않다면 진정으로 사랑 한다고 말 할 수는 없다"
신의 존재를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은 사랑입니다. 그것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랑을 실천하는 일이 나를 기쁘게 할 수 있어야 함은, 나에대한 사랑, 신의 사랑입니다.
이 계절에 있었던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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