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ddhist

파이의 삶

torana3 2013. 10. 30. 09:35

 

 

 

어머니가 인지능력이 감퇴하시고, 사고나 언어사용이 많이 단순화 되시면서

사람들을 만날때마다 하나님과 부처님을 함께 호명하시며 축원 하십니다.

저는 단지, 어머니의 남아있는 사회적 기술로 , 종교가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일종의 방식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온전하신 정신력을 지니 실때도 종교를 차별하여 말씀 하신 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요새 그럽니다. 대개는 부처님들을 찾지만 급한대로, 하나님도 부르고

어떤때는 기독교식의 기도가 소망을 간구하는데 더 맞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제임스님은 요사이 젊은이들이, 어디나 기도하기 좋은데로 종교 구분 없이 성소를 찾는다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얀 마텔의 Life of Pi에서 주인공 파이는 어린시절 힌두교, 기독교, 이슬람교등

자연스럽게 여러 종교에 대한 체험을 동시에 하면서, 깊이 감응합니다.

이는 자신의 종교를 주장하는 신자들과 보통사람들에게는 기이하게 여겨지며 유머러스한 전개를 삽입합니다.

 

" 개인의 영혼은 세상에 닿는다 마치 우물이 지하 수면에 닿는 것처럼.

생각과 말이 닿지 않는 우주를 지탱하며, 우리의 중심 안에서 드러나려 애쓰는 그것은 같은 것이다.

무한성 속에 유한성이 있고 유한성 안에 무한성이 있다.

브라만과 아트만의 관계가 정확히 뭐냐고 묻는다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신비롭게 맺고 있는 관계와 똑같다고 말하고 싶다.

아트만은 브라만을 실현하려고 애쓴다 절대적인 것과 하나가 되려고 하고 이 생에서 순례에 나선다.

거기에는 태어나고 죽고 다시 태어 나기를 거듭하다가

결국 자신을 가둔 덮개를 벗어 던지게 된다

해방까지의 길은 무수히 많지만 길을 따라 있는 강둑은 언제나 똑같다.

업의 강둑. 거기서 각자는 자기의 행위에 따라 해탈하기도 하고 윤회 하기도 한다..."
공경희님의 유려한 번역판에서 그대로 인용합니다.

제가 여기 공즉시색, 색즉시공을 첨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