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썹
불교의 기도문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내용이 선지식을 만나게 해달라는 기원입니다.
제가 성격이 내성적이고 낯가림이 심한지라, 누군가를 따르고 배우려 매달리는 일을
못해서, 배움이 늦어지고 미뤄지는 것을 나이 들어 후회되는 일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돌아보아, 소중한 배움의 인연을 준 분들이 있습니다.
대학에 입학하고, 봄 캠퍼스의 수많은 동아리 광고지가 활짝 핀 꽃처럼, 살랑거리며 유혹 할 때
교문 옆 골목안에 작은 절에서 신입을 맞는 불교서클을 찾아가
생기발랄, 화려함 보다는 진지함을 선택 하는 애늙은이 흉내로 스므살 초반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또래의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 신나는 일들도 많았으며
이미 공부를 많이 한 선배들- 나중, 스님이 되신 분도 있습니다- 에 이끌리어,
전국각지의 절집도 찾고, 유명한 스님들도 만났습니다
이학년 여름, 해인사에 수련대회에서,
당시 삼천배를 올리고, 백련암에 기거하시는 성철 스님을 뵙는 일이 신자라면 누구나 발원 하는 일이라
우리도 절 시작을 하였지만, 저는 겨우 1080배에 낙오 되었고, 다른 아이들도 친견을 이룬 적은 없었지만,
어쩐지 멀지 않은 곳에 계시는 그분을 뵈온거나 마찬가지 인 것 같다는 기분들을 그 날 밤 같이 이야기들 했습니다.
시봉하시던 일타 스님께 계를 받고 그 법명을, 제 또 하나의 인격으로 마음에 두고 삽니다.
잊을 수 없는 또 한분, 법명을 잊었는데, 또 한분 해인사의 큰 스님이 선방에서 나와
수 년째 공양주를 자청 하시어, 눈썹을 한쪽을 밀어내고 자라면 다른 쪽을 밀어 내어,
절밖출입을 스스로 금하시며 정진 하시던,
엄격한 큰 뜻과는 달리, 우리들 노는 것 구경하시고, 같이 어울려 파안,
남자 선배들 언구럭에,짐짓 속아주시며 누룽지나, 수박 내 놓으며 어린아이처럼 즐거워 하시던 그분.
우리가 수련회를 마치고 절 밖으로 나올 때, 일주문 까지 따라나와, 눈물이 글썽이며 배웅하시던
그 맑은 표정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아직, 공부가 멀고 멀지만, 불성의 본자리는,
인간의 다양한 감정과 행위을 모두 그대로 받아주고 바라보는 ,
화엄華嚴 과 같은 장엄한 아름다운 경지가 아닌가.. 상상해봅니다.
-- 이어지는 또하나 그리운 추억이 있습니다.
수계를 받고 일타스님이 친히 적어 주신 수계증을 아버지는 액자에 넣어 안방의 벽에 걸어 놓으셨습니다.
절하느라고 무릎 관절에 이상이 생겼는데, 시내 정형외과에 치료 받으러 데리고 다니셨는데 숙부의 친구이신,
그 원장님 께, 의대 다니는아이가 얼마나 미련 한 짓을 했는지, 흉인지 자랑인지, 일르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