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지 2. 산에서 길을 잃다.
30대 이후 수없이 되뇌이던 , 단테의 독백을 차용했습니다.
그야말로 아무런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지척에 예쁜 산을 두고도 많이 오르지 못했습니다.
실루 오랜만에, 다섯시 좀 넘자 창밖이 훤히 밝아오는 것을, 몸이 무겁다는 느낌이 채 앞서기도 전에
떨치고 나섭니다.
아카시아 꽃이 다 졌는데도, 향긋하고도 구수한 향이 숲에 가득 차 있습니다.
금방 비를 몰고 올 듯한 축축한 대기. 공원 입구의 운동시설에 잔디를 깍은지 얼마 안되는가, 풀냄새.
젊은 시절 미국에서 지낼 때 , 교외 아파트 ( 여기의 타운 하우스 비슷한 동네) 에서 여름 한철 의 그냄새.
통통거리며 뛰어다니는 까치. 주말에 본 영상에 물까치 새끼들을 구조 하여 집 앞 새장에 넣어 놨더니, 까치 일가가 차례로 먹이를 물고 날아와 새끼들을 보살 피더라는 이야기가 겹쳐 집니다.
그러고 산에 오릅니다. 발 밑에 미물들, 땅 거미 개미 들의 생의 욕동들을 방해 하지 않으려고 조심합니다. 올려다본 나무에 매달린 무수한 잎파리들은 아직 조막만한 하트 형태인데, 임춘희 작가의 그림 처럼 옅은 녹생과 아래의 짙은 초록 그림자 색이 겹쳐보입니다. 다음에 작은 스케치북 가져와서 벤치에 앉아 그려보고 싶습니다.
짚으로 만든 오르막 길의 짚으로 만든 가마니 매트틈으로 잡풀들이 자랍니다. 밟아 주어도 문제 없을 것 같아 강한 생명의 힘이 느껴집니다.
그러고 나서 길을 잃었습니다. 산아래 보이는 주택들이 고만 고만 하고 짐작으로의 방향은 어림도 없어 결국 집앞, 산으로 오르는 입구에서 멀리 떨어진 길가로 내려 왔습니다.
이왕이면 쭉 산길을 따라 새소리 들으며 돌아 왔으면 좋을 것을, 버릇 처럼, 계획이 틀어 지는 것에 자책 합니다.
그러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좋은 일에 대해 다른 사람과 함께 하고 싶다는 오래된 습관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그러지 않아야 겠습니다.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전후 관계 사정 결과를 같이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침 산에서 길을 잃으면서, 나홀로 가야 하는 길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마음 먹습니다.
공연히 동반되는 온갖 감정들, 외로움 죄책감 미안함 서글픔 등등, 처음에는 같이 가야할 심정들이지만, 그러나 나의 진정한 길을 가는데 방해가 될 뿐입니다. 혼자임에 더 익숙해져야 합니다.
행복 하려고가 아니라...불행하지 않으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