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숲의 학생이었던 프랑스 보자르 유학생 T군의 조부 이면서 수필가이신 오기환 선생님의 초대로
문인들의 모임에 참석 했던 것을 인연으로 지난주 목요일 정신분석에 대한 강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강의에 대한 부담 약간의 무대 공포도 있는지라, 핑게를 찾고 싶었지만.
오 선생님의 부드럽지만 단호한 요청을 거절 하는 일이 더 어렵습니다. 몇 주를 고민 하다가, 아 그래 그냥 내 이야기를 하자...
그렇게 컨셉을 잡고보니, 일사 천리로 서너장 A4를 메울 정도로, 할 말이 많아져서 잘라내는 작업이 더 걸렸습니다.
멤버 모두 저보다 윗연배신데 , 마치 시간 여행이라도 하는 것 처럼,
정통의 문예 클럽 분위기 입니다.
공무원이나, 선생님 교수 등, 평생 반듯한 삶을 살아 오신 데다가, 퇴직 후에 , 문학에 대한 향수 와 열정,
으로 꾸준한 글쓰기와 더불어 대부분 이미 서너권의 작품집을 내신 , 대단한 저력을 가진 구룹입니다.
그날도 근래에 출간한 수필집과 시집의 출판 기념회를 겸하고 있었습니다.
여행과 출사出寫즐기시는 오선생님의 유람 중에 우연히 발견 하셨다는 북한산 밑 작은 식당은
금속 공예가와 연극을 하는 부부가 운영합니다.
실내와 정원에는 주인이 만든 구리 조형작품이 전시 되어 있고 , 가게 이름도 구리집( Cooper House) 입니다.
식이 시작 되기전 , 정원에 내려앉은 따스한 빛이 새어들어오는, 어느 異國의 소박한 가정집에라도 들어 온 것 처럼 긴장이 풀어지고 잔잔해지는데
멤버들의 담소중에 언뜻 그리운 장소의 이름이 귀에 들어 옵니다.
아, 제가 그 근처 살았거든요, ..울컥 반가움에 끼어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두 분이 제 모교의 대선배인 것을 알았습니다.
제가 입학 하기 바로 전 해 학교가 도시의 외곽으로 이사 했습니다. 시멘트 교사校舍 와 커다란 강당만 덩그라니,삭막한 신축 건물과
황토흙과 비오면 질척거리는 운동장을 나무 심고 리어카끌어 흙 실어 나르는 , 교정을 정비하는 노역에 동원 되었지만
그 전설의 아름다운 븕은 벽돌의 옛 교정을 잘 알고 있습니다.
언니들이 그학교를 다녔으며, 아름다운 히말라야 시다에 기대어 포즈를 취한 , 흑백 사진 속의 장면들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어머니는 그 학교의 담장옆을 따라 출근 하셨습니다.
고뇌가 많으셨던 어머니는 십년도 더 입으신 낡은 긴 코트를 걸치시고 생각에 잠겨 지나가는데, 마침 언니가 운동장에 나와 있었다가
어머니를 발견하고 담장에 매달려 부르는데 ,그때 친구들이, 너희 엄마 철학자 같다... 했다는 이야기는
제가, 그장면 그 회색 홈스팡 체크무늬 , 냄새, 까칠한 촉감 까지도 그자리에 있었던 것 처럼 생생하게 기억됩니다.
차이가 많이 나는 어른들이신지라, 공통의 추억을 찾을 수 없다해도 선생님 께서 근무 하셨다는 그 남중학교는 ,
우리집 마루에서 멀리서도 또렸하게 보였습니다., 고향을 떠나는 스무살 무렵까지, ,
교실에서 수업을 하시고,학생들을 상담지도 하셨다던 그 시간 , 아주 가까이에 공존해 있었던 것입니다.
서툴고 두서 없는 강의를 경청하시고 손잡고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으시는데, 응석이라도 부리는 것 처럼, 행복합니다.
그 분들의 정제되고 깨어 있으며 여전히 발달을 지속하는 삶. 더 나이 들었을 때의 내 모습을 꿈꾸어 봅니다.
...
시내에 오랜 만에 나간김에 전시 일정을 찾아 보았습니다.
시립미술관을 재 정비 하고 다시 여는 두 가지 기획 전시가, 강박Compusion to repeat 과 Hometown주제입니다.
강박. 영상 작품이 많습니다. 진득하게 앉아서 보기가 힘듭니다. 아.. 뭐 공부하는게 아니니까..
스치듯 지나갑니다. 의학적인 의미의 강박과는 다른 주제인 듯합니다.. 강박이라기보다는 고립, 실존적 불안.. 그렇게 봐야 할 듯 합니다.
고향, Home town 은 아랍인들의 작품입니다.
고향의 은유적인 서정과는 거리가 멉니다.
" 미술은 지워지고 감추어지고 왜곡된 역사를 새롭게 쓰는 기술이기도하다.
우리가 안다고 착각했던 중동과 아랍에서 탈락하거나 망각한 시간을 기입하여 새로운 기원을 부여합니다. ..- 침묵의 서사
고향이란 무엇인가. 슬프고 고통스러웠던 기억 마져도, 나의 것인,, 내 생명이 시작되고, 누군가 키워주고 곁에 있어 주었던...
같은 공간 같은 기운...
"가벼운 미소를 띄우되 가슴은 펴고 마음을 발 끝에 집중하면서 느리게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다."
선배님의 책에서 한 구절 옮겨 붙입니다.
십자군 전쟁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그 전후 문학의 배경으로 어렵풋이 아는 정도.
성을 찬탈하려는 두 세력의 전투장면과, 성의 모형이 설치 되어 있고 같은 공간에서 마리오네트 로 제작한 영화를 상영하고 있었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에게 聖戰을 독려하는 교황과 왕. 피폐한 정신으로 고향으로 돌아온 십자군들의 이야기,
잔인한 살육, 종교, 이데올로기 갈등의 깊은 뿌리를 봅니다. 현시대라고 다를게 없습니다.
그게 그렇게 사는 일, 소소한 개인의 행복을 능가 할 일인지...
무겁게 초겨울 어두운 도심을 빠져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