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休暇期 3- 인간에 대하여 1

torana3 2019. 5. 6. 12:10


" 나는 인간이다. 인간에 관한 것은 하나라도 나에게 무관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아미엘의 일기 중에서


본래 사람의 일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순전히 관찰자의 입장으로, 사람을 관찰하고, 스토리를 상상하고, 동기부여는 관계에 대한 것이 주됩니다.

그렇다고 잘 어울리며 활발하며 친밀감이나 사교성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그저 먼 발치에서 인간人間을 구경합니다.

이런 것들로 인해 정신의학을 하게 되었는지, 아니면 정신과 의사가 되어서 그런일 들이 강화 되었는지,

전 후가 분명하지는 않지만, 아무튼 복합적일 것라고 생각합니다.


" 그의 목적은 항간의 사람들을 분석하고 이끄는데 있다.

인간 탐구자는 남에 대해 쓰고 또 남을 위해 쓰는 것이다. "-- 아미엘의 일기 역자, 민희식

인간을 탐구 한다고 까지는 아니지만, 나의 경우, 스스로에 대한 탐구를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타인을 보면서.


TV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파로호의 외딴섬에서 겨울에 갖혀지내는 노 부부, 그러다 남자는 홀연히 생을 다하고

여자 혼자 황망히 , 자녀들 불러 장례치르고 , 또 생을 이어가는  그런 스토리를 언젠가 보았습니다.

그렇게 오지에 살 수는 없을 것 같아, 그랬지만, 산천어 축제 의 야단법석이 아니라, 그 이유로  파로호에 한번 가보자

휴가의 목적지는 그렇게 정했습니다.

그러나 도중에, 사람들이 적당히 모여드는, 그런 읍내 구경도 합니다.

외지 사람들은  땅값도 오르고 관광지로 유명한 대표적인 이름의 고장보다도,

오랜세월, 옛날 부터, 뿔뿔히 산에 외롭게 지내다가, 장날이면 단단히 채비하고 산을 내려와 모여드는 그곳에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을 알리 없습니다.  공기가 아늑하고 밝습니다.

굳이 맛집을 찾지 않아도, 산적 같이 우락부락한 사장이 손수 두툼한 손으로 익은 고기를 잘라 주면서, 자화자찬,

 자기네 식당의 재료를 자랑하는 순박함이 그리 거슬리지 않으며, 맛 도 또한, 기대와 상상 그대로입니다.

, 한번씩은 가 보았던 유명한 관광지는 모두 우회 합니다.  강원도 치고는 황량하고 볼품없는

-게다가 산맥의 서쪽은 아직 봄이 닿지 않았습니다. - 고갯길을 넘어 가는 데 산 정상에, 전투의 기념비만 달랑,

실패한 상업 공간인지 널른 주차장에 멈추는 차하나 없는 휴계실에 들릅니다.

물건 고르는데 까다로운 남편이, 이가 부실헤진 뒤로는 찾지 않던 엿과 생전 먹지도 않는 마른 나물 한봉지를 ,

쌓인 먼지를 털어 내고 선뜻 현금까지 내고 삽니다. 헤프기만 한 나를 단속하는  그가 한번씩 이런  선심을 낼 때 저는 공연히 즐겁습니다.  


고개를 넘으니 별천지 처럼, 꽃이 만발하고 아기자기한 관광지 가게와 숙소들이 즐비 합니다. 바닷가도  스쳐지나갑니다.

" 평화 그 자체가 투쟁이다. 아니 투쟁, 활동이 법칙인것이다.

노력 속에서 밖에는 안식을 찾을 수 없다. 마치 불꽃이 연소 속에서만 존속 할 수 있는 것과 같다."  - 아미엘

안락이 영속일 수는 없다는 것을 이제는 잘 압니다.  편안함,만족을 구하는 어떠한 준비도 완벽 할 수는 없습니다.

그저 때때로, 투쟁적으로 고뇌의 이면에,존재하는  안식과 행복을 추구하는 수 밖에 도리가 없습니다.


온천의 숙소 에서 오래 고생하던 나의 피부를 진정시킵니다.

공기의 신선함, 일, 그리고 어차피 당장은 뽀족한 수가 없는 , 해결되지 않는 일에 대한 조바심을 내려 놓은 탓도 있겠지만  신기하게도 가려움과 염증이 가라 앉습니다.

저녁 산책, 오랜 만의 숙면, 밤새도록, 듣는이 없는 , 개구리 가족의 합창, 아침, 안개. 그리고 이른 아침,준비중 인데도 첫 손님을 위해 서둘러 뽑아주는 커피의 향.

맛있는 식사를 위해 머물러 둔 시장기. 아, 안식을 위하여 모든 오감을 총 동원하여 각고의 노력을 하는 중입니다.


설악은 오랫동안의 자신에게 쏟아지는 찬사로 적당히 나태하며, 친절하지 않는 오만한 주인과 같습니다. 그 명성에 아부 할 생각은 없습니다.

금강산의 자락이 있답니다. 그 장대하고 형언할 수 없는 존귀함, 다다를 수 없는 신비에 복종 하려고 합니다.


금강산 화암사 . 화는 경전의 장엄한 추상적인 단어 華가 아니라 벼 禾 입니다.

옛날에 절에서 공부 하던 스님들이 하도 배가 고파 식량을 얻는 소원을 빌었더니, 꿈에 노인이 나타나, 절 뒤 바위에 주장자를 치면

쌀이 나온다, 그대로 해서 양식을 얻었답니다. 옛 절집은 남아 있지 않고 절터에 말끔한 새 건물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기도처를 따라 오르다보니, 벼가 나오는 바위가 옆에 보이고 멀리는 금강산의 봉우리도 보입니다.  

그 정상에는 미륵 부처님이 서계십니다. 바라보니 좋은, 저 아래 의  인간사가 한눈에 펼쳐집니다.

새로 조성한  부처님 뒤에는 나한의 자리들이 비어있습니다. 초는 얼마, 등은 얼마, 기간에 따라 가격이 올라가고 영구히 남을 나한의 석조는

백만 단위로 뜁니다. 이런 흥정은  이런때는 사람을 만나는 것 조차 불편합니다.  에먼 보살에게로 나의 경계가 투사 됩니다.

, 그저  마음 가는 대로 스스럼 없는 소박한 시주로 걸림이 없어야 하는데, 지은 마음에 붙잡혀  버립니다.

" 신앙은 인식의 상상적 예지이며 잠정적이고 가설적인 설명이어서 의식은 그것을 발견하고 또 받아 들이고 있지만

동시에 신앙을 증거가 따르는, 또 다른 논증을 거친 진리와 혼동한다"  - 아미엘

확실히 신앙이 그 신비를 주장하는 경제학 과 혼동 되는 듯 합니다.

 

큰도로를 피해서 우회하여 역시 금강산 사찰인 건봉사로 향합니다. 

누각에 장안사 , 유점사 등 금강산 절이나 암자들의 오래된  사진들을 전시 해 놓았습니다.

절에 기거하던 사람들의 단체 사진도 있습니다. 긴장하고 찌푸린 채로 카메라의 렌즈를 노려봅니다.

신앙을 공부하고 해탈 하는 일이, 즐거운 일은 아닌 듯 싶습니다.

이미 그 육신의 한점도 남지 않았을, 오래전 사람들을 바라봅니다. 어린아이도 있고 청년, 가운데는 스승일 노 선사도 보입니다.


"세상과 너는 서로 타인과 같은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다. 세상은 너를 이해 하지 않으며 너도 세상을 이해 하지 않는다.

이윽고 너희들 사이에는 조금도 공통되는 데가 없어질 것이다.삭막한 건조, 사막속에 매몰된 화석,죽음의 침입,그것이 생명과 반대되는 것은 확실하다.  "

"나는 나의 다음에 오는 세대에 의해 밖으로 밀려 난다고 느끼는데 어찌 죽음이 괴롭다고 말 할 수 있겠는가, 그 세계의 개인적인 연결을 제하면 나는 어떤일도 필요 하지 않다."- 아미엘

 배고픔을 면하고, 시간을 채우는 노동의 나날들, 고단함, 고통  중에 그들은 깨달음의 환희를 순간이라도 느꼈을까,

그 깨달음이라는 것이 정말 귀하고 중요항 것일까...그저, 한 봉오리에서 꽃이 피어 났다가, 시들어 사라지는 것. 모든 것은....





                                                느낌이 다르게 찍혀 둘 다 올립니다. 포장 용 크라프트 종이에 먹과 챠콜로 건봉사 사진을 보고 그렸습니다.


                                                           ( 실은 정밀 묘사 잘 못합니다. 대충 이미지만 기억하고 그냥 그렸습니다.).





                                                                                      화암사 전설의 바위와 멀리보이는 금강산 자락 봉우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