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있었던 일
1. 토요일
내향적이고 꼬냥꼬냥 저혼자 노는 것만 좋아하지, 사회적, 공식적인 일을 해야 한다면,
몇 칠 전 부터, 그야말로 자나깨나 좌불 안석, 몸살을 합니다.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애초부터 맡지도 않아야 할 터이지만, 그러나 마음은 또 약해서 거절을 못합니다.
학회일로 , 어른을 만나러 가는 자리입니다.
추상같은 엄격함과 큰 바위 같으신, 그분을 먼 발치에서 여러 사람들과 섞여서 대했을 뿐
혼자서 뵈러가야 할 일은 마치 어려운 시험을 치르는 것처럼, 난제입니다.
선재 김동순 선생님이십니다. 최초의 여자 정신과 의사 이시며, 의학이나 정신의학의 히스토리에 그분의 영향이 깃들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그러나, 실은 그러리라 예상 했던 일이지만, 60년대에 지어, 지금까지도, 환자를 보고 계신
그 병원 건물이 주는 안온함, 향훈에 젖어, 오랜세월의 이야기를 때로는 소녀처럼, 풍파를 이겨내오신 비장함,
두시간도 훌쩍 넘기며, 그야말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공통된 관심, 정서를 엮어 나갔습니다.
보통의 할머니 처럼, 다정함, 애잔함, 섭섭함을 뒤로 하고 작별 인사를 드렸습니다.
용담초와 메리골드와 소국으로 된 꽃다발을 주문 했습니다. 상대방이 무엇을 좋아 할 것인지가, 깨닫는 순간, 만남의 기대는 커집니다.
어머니보다 4살정도 아래이신 선생님의 회상에 저도 자주 끼어듭니다. 어머니 처럼, 러시아의 자무스에서 어린시절을 보내셨답니다.
2. 일요일.
오랫만에 절을 찾았습니다.
법회에 참석 하였는데, 가부좌는 커녕( 전 겨우 반가부좌만 가능 하지만) , 책상다리도 불편합니다.
제때 정리 하지 못한 삶의 군더더기가 들러 붙어 도무지 집중이 안됩니다.
맑은 독경을 듣고 싶었는데, 천수경보다 두세배는 더 길듯,온갖 축원 리스트가 이어집니다.
주지스님의 법문은, 길고 지루한 반야심경의 강의가 이어집니다.
노트를 줄줄 읽는 것으로 강의 를 채우던 가장 지루했던 교수님의 수업 이 연상 됩니다.
( 부처님, 스님, 죄송합니다 --; )
그러시다가, 뒤늦게 흥이 나셔는지, 내려놓으라는 말이에요, 지금 죽기전에...쉬운 말로 토를 다십니다.
그게 훨씬 낫습니다.
霧山 스님, 선시
제자리 걸음
마을 사람들은 해 떠오르는 쪽으로
중(僧)들은 해지는 쪽으로
죽자 살자 걸어만 간다.
한 걸음
안되는 한뉘( *한세상)
가도 가도 제자리
걸음인데
3. 그리고 주말 내내.
이런저런 집안일을 하다보니, 두드러기가 솟고 전신은 마치 전쟁터처럼, 난리가 납니다.
깨달은 바가 있습니다. 긁는 행위는 중독이다.
긁는 자극은 아마 쾌락 중추를 건드리나 봅니다.
임상에서 자폐 스펙트럼이나, 조현증을 갖는 환자들이, 의미를 알 수 없는 자해행위를 반복합니다.
통증을 느껴서 회피 하기 보다는 심한 자극이 쾌락에 연결 되어 있는 것 아닌가.
( 전문가로서, 근거를 찾지 않고 함부로 말 할 수 없지만, 그냥 떠오른 생각 입니다)
저는, 내려놓으라는 말, 쉽게 못합니다. 육신의 명령은 그렇게 거역하기가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