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탄트 돈즈 Étant Donnés - 마르셀 뒤샹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은 " 내가 죽은 후 50년이나 백년후의 관객들을 대하고 싶다" 고 말했습니다.
그의 예언 대로 죽은지 50년이 지난 지금, 뉴욕의 아티스트인 오즈카야 Serkan Ozkaya 는
뒤샹의 마지막 작업인 에땅트 돈즈 “Étant Donnés,” 의 베일을 완벽하게 벗겨내려 하고 있습니다
에땅뜨 돈즈는 필라델피아 아트 뮤지움에 설치된 구멍을 통해서 핍쇼 상자 안의 디오라마 를 들여다 보는 것과 같은 그래픽 아트입니다.
오즈카야의 재창조 작업은 뒤샹에 대한 이제까지의 일반적인 반응에 비해 대단히 특이합니다..
그것은 경외나 재해석 , 비정상적 정신을 밝혀내려는 것과는 다릅니다.
오즈카야는 뒤샹이 여장을 한 또다른 자아, 로즈 샐비의 이미지( 만레이의 사진 자품) 를 에땅뜨 돈즈에 투영한 프로젝터로 변형시켰습니다.
미술사상 최고의 비밀 스러운 작품 안에 오십년동안 ,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자화상이 정말로 숨겨져 있었던 것인가 ?
20세기의 가장 영향력있는 작가인 뒤샹을 기리기 위한, 사해문서(秘書)가 펼쳐지는 순간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오즈카야가 발견 한 것은 단지 그의 상상력일 뿐 이라는 것입니다.
Duchamp dressed as his alter ego, Rrose Sélavy, in 1921 A close-up of the projection from Mr. Ozkaya’s installation — a likeness of Duchamp, or a mirage?
포스트 마스터스 갤러리 Postmasters Gallery 에서
" 우리는 기다린다 We Will Wait - 프랑스 어로 En Attendence 에땅트 돈즈의 애너그램 -는 제목의 오즈카야의 설치작품에서
관객들은 마치 로르샤하 잉크반점에 떠있는 듯한 뒤샹의 양성- 성정체성의 이미지( 또는 신기루 같은)를 보게 되며
이 유령 스토리를 어떻게 받아 들이는 지는 보는 사람 각자의 취향에 따라 달라집니다.
오즈카야의 작품은 현대 사회에 만연한 유명한 작품을 도용하는 문제를 다시 제기 하게 됩니다.
현대 작가들에게 자신의 경력을 추가 하기 위한 예술적 탐구로 유명한 작품을 재구성 할 권리가 과연 있는 것인가?
그의 작품은 리서취 인가, 창조적인 이미지의 재구성인가, 아니면 단지 미술사의 하이재킹인가?
상징적인 작품에 대한 불가침을 둘러싼 논쟁은 뒤샹 시대의 초현실주의자나 다다이스트 들의 정신과 과히 다르지 않습니다.
이미 신디 셔먼이나 리차드 프린스와 같은 회화생성( Picture Generation) 의 변절자들이 하던 일들입니다.
뒤샹이 변기에 사인해서 작품으로 내놓은 자극적인 장난 끼가 오즈카야에 까지 전승된 것입니다.
재스퍼 존슨이 모든 뮤지움 작품 중에 가장 이상한 작품으로 평했던 에땅트 돈즈에 오즈카야는 신비함을 더할 것입니다.
전경에 대자로 누운 나신- 성교 직후의 나른함인지, 성폭행을 당하고 난 무력함인지-의 기이한 광경을 엿보는 두 작가의 핍홀을 통한 시각이 제시됩니다.
뒤샹은 체스에 미쳐 예술을 그만 둘거라는 세간의 의혹이 있던 20년간의 공백기에 비밀 스러운 작품들을 완성했습니다.
1968년 그의 사후 일년 뒤에 , 아무런 기본 단서없이 , 세상에 공개된 이 디오라마 작품은 몇세대를 거치면서
수 많은 예술가와 철학자들에게 끊임없이 매혹적인 수수께끼였습니다.
뒤샹의 사후, 에땅트 돈즈는 이 방에서 발견 되었습니다.
예술사가인 줄리안 제이슨 핼러딘Julian Jason Haladyn,
에땅트 돈즈는 뒤샹의 작업의 역사에 대해 영원히 질문을 던지게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오즈카야는 에땅트 돈즈를 프로젝터의 형식( 카메라 옵스큐라- 暗 상자)으로 작업 할 수 있는가, 그렇게 얻어진 이미지는 어떨 것인가,
라는 사소한 what-if 질문으로 시작 했습니다.
카메라 옵스큐라는 상자의 구멍을 통해 어두운 상자의 내벽에 빛이 모아져 하나의 정교한 이미지를 만드는 것인데
오즈카야의 작업은 복사기의 원리처럼 상자 내부에 설치된 빛이 두개의 핍홀을 통해 관객들이 있는 공간으로 나옵니다.
두개의 광선이 출구 앞에 세워둔 스크린에 부딪혀 두개의 투사된 이미지 ( 설치물 내부의 뒤집힌 스냅사진들)가 부분적으로 겹치게 됩니다.
그들이 만들어 낸 기아학적인 색조면(color field)이 작은 이미지를 만드는데 사람의 얼굴 처럼 보여집니다.
그런데 그것이 뒤샹이 만든걸까,
오즈카야는 관객이 보는 것을 결정하기는 하지만, 자신의 생각은 그러나 그 이미지를 한번 보면, 보이지 않기는 어렵다고 말합니다.
터어키 출신의 이 아티스트는 오랫동안 에탕트 돈즈를 연구하고 3-D 프린트로 원화의 차원과 구성요소들을 재현 했으며
그 조각들의 구성에는 구멍을 통해서 들여다 보는 것이 예술가가 어떤 상상 을 했는 가를 짐작 할 만한 증거들이 많습니다.
오즈카야의 모형에 나타난 뒤샹의 모습이 우연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장시간 바라보면 얼굴이 나타나지만 그것이 뒤샹이라고 인식하기 어렵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빛, 그림자나 영상은 뒤샹의 어휘에 잘 어울린다고 말합니다.
뒤샹은 자화상에 일상을 두고 매료되었으며 환상적인 장치로 예술 작업을 극대화 합니다.
악명높은 광대의 모습, 무대에서의 정교한 농담 같은 것으로 나타내거나 , 과도하게 비판을 받으면, 사람들의 해석을 혼란시키는 새로운 메모박스를 내놓습니다.
이 설치물의 전체 타이틀은 " 에탕드 돈즈: 1.폭포 2.조명 가스 3...
관객들은, 일종의 논리 퍼즐 게임 처럼, 그 제목을 해독 할 수 있는 열쇠가 그 설치물 안에 있다는 것을 압니다.
나신이 들고 있는 램프, 원경에 희미하게 빛나고 있는 폭포등이 그 예입니다.
뒤샹의 얼굴이 보인다, 안보인다 하는 문제는
실은 죽은 아티스트와 현재의 관객들 사이의 소통을 매개하는 공정한 방식인가'
입니다. 또는 유령이 들어있는 제록스 기계가 뒤샹 자신의 메세지를 쓰고 있는 것인가, 가 중요합니다.
오즈카야는 그 해석에 사람들을 초대 했으며 더 많은 예술 작업과 방식으로 활성화 되기를 희망합니다.
" 우리가 그것을 본다는 것, 그것은 팩트가 아니라, 예술이며, 게임입니다."
그림 앞에서 고요하고 깊게 명상한 후, " 이건 대단한 이야기야!" 라 말하는 것,
뒤샹이 죽고, 진실의 시대가 지난 현재, 예술이 열망하는 유일한 목표 입니다.
기사 내용 요약 https://nyti.ms/2yxqy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