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만화의 추억

torana3 2015. 12. 8. 11:39

제가 자라던 6-70년대에 만화책의 인기는 지금의 전자게임이나 연예인 추종과 비슷하게 열광적이었습니다.

 

독재자들은 가상의 적을 만들기를 좋아 합니다.

선과 악, 흑과 백으로 사람의 정신이나 집단을 분리 시키고,

일견 그럴 듯 해보이는 명분을 내세워 자신들의 권위와 파워를 합리화하고 강화합니다.

사람들은  반대 편으로 낙인이 될 것이 두려워  자신이 스스로 사유하고 행동할 자유를 포기하며

그 강력한 힘에 추종하게 됩니다. 

만화는 그런 시절에 해로움의 상징으로 종종 거론되고 금지 당했습니다.

 

만화가게에 갈때마다 혹시 학교 선생님들에게 들키지나 않나, 눈치보다가 잽싸게 들어가고

만화책 처럼 안보이게 하려고 위장하여 빌려다 보았던 생각이 납니다.

두분다 교육자였던 우리 부모님은 만화 빌리러 가는데 따라가주기도 하시고  반납도 대신 해주셨으니,

저는 다행히, 옳고 그름에 대해 지나치게 경직되지 않은 유연한 사고를 유지 할 수 있었습니다.

-- 그러나, 비판이나 논리의 결여라는 치명적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흑

 

제가 국민학교에 다니던 60년대 말, 만화방의 전성기 였습니다.

그 후 소년잡지나, 신문에 건전하고 세련된 만화들이 등장하였지만,

인간의 심층적인, 신비롭거나, 비현실의 세계를 상상할 수 있는 컨텐츠는 쇠퇴되어 버린 듯 합니다.

 

그 반작용이었는지 70년대 말에는  성인 만화들이 등장했고 (고우영의 수호지가 그 시발 아닌가 합니다)

독재의 시대에 그리 해로운 내용이 아니라고 판단되었는지, 일본 풍 순정 만화들이 쏟아지다가,

그 이후로는 일본의 망가가 대세를 이룬 듯 합니다.

 이상무, 이현세, 허영만같은 작가들이 명맥을 잇다가 다시  단행본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했으나,

제가 보기는 국내의 만화시장은 소재가 한정된 느낌입니다.

오랜세월, 불필요한 검열과 참견 때문에 예술적 상상력이 마비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청년기 이후는 일본 만화에 매료 되어 있습니다. 최근 까지도.

 

왜 느닷 없는 만화타령이냐면, 1988 응답시리즈에 나오는 만화의 컷을 응용한듯한 몇 장면 들 때문입니다.

응사에서 겨울방학에 삼천포의 집으로 놀러가려고 작당한 하숙집 아이들이 먼저 우르르 나서는데,

윤진이가 따라가다가 계단위에 서있는 삼천포에게 뒷덜미를 잡혀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모습,삼천포 윤진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응팔에서 아버지에게 귀를 잡히고 끌려 들어가다가  택이네 금은방 문을 열고 택의 바둑시합 결과를 묻는 동룡이 부자의 포즈 ,

성덕선의 올림픽 개막식 등장을 TV로 보면서, 먹을 것을 들고 어른들 환호에 덩달아 폴짝폴짝 뛰는 진주의 모습.

 

만화책에서 흔히 볼수 있는 희화된 캐릭터입니다.

 

일요일, 서점에 나갔다가 잘 된 만화라 호평 받는 송곳을 사다가 읽는 중입니다.

그림이나 내용에 불만은 없습니다만, 역시  자극적인, 사회를 보는 극단적 시각, 비슷한 소재가 여전합니다.

영화도 소설이나 만화 는 기술에 비해 스토리의 다양성이 빈약합니다.

비슷비슷한 소재에 눈에 보이는 세상에만 치중하고 있습니다.  - 실은 그래서 리얼리티가 떨어집니다.

 

대세에 묻어 가기, 성공모델 따라가기가 사회전반의 흐름, 상업적인 유도로 인해 더욱 심해지고 있습니다.

개인의 열정, 몰두, 진정한 자아 실현이나 성취감에 방해가 되는 일입니다.

 

이런때  응답하라 와 같은 드라마가 신선합니다.

 작가나 감독이 자신의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부담스러운 인물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 동네에 슬쩍 끼어 든다해도

아무도 내가 이상하다느니, 선하거나 악하거나 상관 할 일이 없을 것 같습니다.

잘하면 흔쾌히 칭찬받고 슬픔은 당연히 위로 받을 것 같습니다.

부모의 가난, 찌질함, 부부, 형제간의 다툼이 있어도 불행하지 않고 깡패한테 당해도 공포가 오래 가지 않고

열패감, 자기 비하로 괴로워 하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웃을수 있는 장면들이 수시로 끼어있습니다.

참 유쾌한 드라마이며, 공감에 대한 상상력이 대단합니다.

 

 

 

어렸을때는 만화 그리면서 혼자서 중얼거리며 이야기 만드는 놀이를 했습니다.

드라마에서 진주가 그러듯이 혼자 노는데 아무도 참견하거나 방해 하지 않았습니다.

기를 쓰고 무언가를 주입해서  인간형을 만들어 내려고들 안했습니다.

어린아이의 세계가 고스란히 보호되고 보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