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ychiatrist

다른 사람의 머릿속

torana3 2015. 8. 17. 07:37

 

 

 

                                                                             숲에서 욕망그리기 라는 공동 작업을 했었습니다.

 

저는 아주 어린 시절에 제 안에 갇혀있는 나에 대한 인식이 있었습니다

( 다른 사람의 경우는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모든 경험은 오로지 나 혼자의 일이며 '타인과 경계지어진 나'를 느끼는 것은 두렵기도 했습니다.

도대체 나는 왜 타인이 아닌 나인가,

언제 부터 나는 시작 되었는가,

타인이 아닌 다른 사람은 진정으로 존재 하는가.

 

파라노이드 한적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 가족, 동네 사람, 친구, 또는 라디오를 통해서 멀리 사는 사람들, 외국인들( 미국사람)

까지도 잠시 내 앞에 와서 연극을 하고, 그리고 사라져 다음 역활을 기다리는 것...  

 

그러다가 언제 부터인가는 그' 나'를 잊고 삽니다. 지금도 그런 인식을 붙잡기는 어렵습니다.

절대적인' 나' 가 아닌, 관계속에서의 '나'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는 왜 그 관계의 대상인 타인으로 인하여 울고 웃고 슬프고 즐거우며 번민 하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진정한 타인이 아니라, 내 머릿속에 들어 있는 '또 다른 나' 이지 않나

또 그렇다면 어린시절에 무의식 적으로 획득된 타인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작용하고 있다는 말인가.

(나를 보면서 그것를 타인이라고 여기는 나르시스의 신화와 같습니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 라일리의 머릿 속에는 조이의 힘이 막강합니다.

'행복감'은 다른 모든 감정들을 조절하고 어르고 달래여 드러나지 않게 하려고 동분 서주 합니다.

공포와 분노 짜증은 그래도 여전히 톡톡 튀지만,

 슬픔은 맥을 못 춥니다. 조이는 기를 쓰고 그를 억압합니다.

 조이는 11세 라일리의 핵심 감정이 아닙니다.

그의 부모가 , 심어 넣어준 환상입니다.

그들 역시 자신들의 위기감을 억누르고  " 우리 행복한 딸이 어디 있을까?" 라고 반복적으로 말하면서 조이를 과도하게 일시킵니다.

슬픔은 서서히 즐거움에게 바톤을 넘기는 것이지, 행복감으로 상쇄 되는 것은 아닙니다.

무리하게 서로 다른 감정을 뒤섞어 버려 라일리의 머릿속은 무너지고 황폐해집니다.

 

나를 떼어놓고 순수하게 타인의 마음을 읽을 수가 없다면, 잠자코 물러나 지켜보는 도리 밖에는 없습니다.

그를 바라보는 내 마음에 일어나는 슬픔이나 분노는 나의 것입니다.

조심스럽게 둘을 분리 해나가면서 기다리는 것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