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좋아 하시는 것들
어제는 오랜만에 병원에 갔습니다.
일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진로에 대한 한 방향으로, 말하자면 탐색입니다.
그런데, 우연히도, ( 선정해 주는 대로 였는데)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계시던 그 병원입니다.
병동안에서 치료가 불가능한 중증 환자들을 대상으로 화초의 분갈이하는 치료 프로그램을 하고 있었습니다.
오색 마삭줄이라는 덩굴 식물입니다.
지도하시는 원예치료사의 설명에는 식물에 대한 절절한 애정이 묻어납니다.
절대로 웃을 일이 없을 듯 했던 환자분들의 입매에 미소가 돕니다.
생전 감정에는 무뚝뚝 했었을 남자분들이 갑자기 참견도 하고 수다가 늘어납니다.
참 몰랐던 일들이 많습니다.
세상의 도처에 배워야 할 일, 해보고 싶은, 반드시 해봐야 할 일들이 널려있습니다.
어머니는 꽃을 좋아 하셨습니다.
그리 넓지 않은 집 마당 구석 구석에 참 다양한 식물들을 구해다가 심어 놓으신 일은 아버지가 하셨고,
어머니는 하나하나에 이름과 이야기를 붙여 가면서, 사랑 하셨습니다.
진분홍 히노데와 자목련과 라일락을 특히 좋아 하셨습니다.
난장이 채송화로 화단 가장자리를 늘어서 심고 봉숭아는 여름에 손톱에 물들여야하니 씨를 받아 두는 것을 잊지 않으셨으며
음식에 물들일 치자꽃이나, 분꽃의 씨에서 나오는 하얀가루를 단장하는 새색시의 마음 같다며 애잔해 하셨습니다.
감나무 꽃을 실에 꿰어서 목걸이를 만들어 주신 것도 기억납니다.
노래를 부르셨습니다.
저는 아버지에 물려받은 음치인데 어머니는 맑은 음색을 가지셨습니다.
어머니가 부르시던 노래들을 기억 합니다. ,
하나가 사끄라고 꽃이 핀다는 동요와, 너구리가 장난친다.( 쇼조지노 니와와)
스시벤토와 라무네, 사이다를 싸가지고 소풍간다,
그리고 사요나라, 사요나라, 가에리 마쇼 .. 라는 가요도 부르셨습니다( 일본어 발음은 제 어린시절의 기억 그대로라 틀릴지도)
김소월의 시에 붙인 노래들, (산유화를 특히), 해방 후의 동요들 , 나운영 의 버선 깊는 아가씨,
때로는 어머니가 오래 근무 하시던 여학교의 교가를 아주 엄숙하게 부르셔서... 영원히 빛나리.. 하는 후반부는 지금도 기억 납니다.
어머니는 냉면을 좋아 하셨습니다.
평안북도 정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 셨는데, 남부지방에서 이주해 가신 외가와 다른
그 지역풍습들을 신기해 하셨으며( 온 가족이 한밤에 옷을 다 벗고 잔단다, 겨울에도..)
한 겨울 얼음이 동동 뜨는 냉면의 맛을 그리워 하셨습니다.
정년퇴직후에는 , 절과 연못으로 기도하는 순례를 매일 하셨는데,마지막 코스로 꼭 짜장면을 드셔고
뇌졸중에서 겨우 회복하셔서 보행기에 의지 해서 가까운 중국요리집에 모시고 가면 참 맛있게 짜장면 한그릇 드셨습니다.
거기에 소주 한 두잔. 이태백이 처럼 술 자리에서 감상을 말하시는 것이 어머니가 제일 행복한 순간이다 하셨습니다.
어찌 그러셨겠습니까, 그냥 그 순간을 행복으로 알고 사시려는 강한 의지셨겠지요,
왜 그리 세상을 바쁘게 살았는 지 모르겠습니다.
새벽에 , 한밤에 그 병원으로, 집과 직장을 동동 거리며 그렇게 숨가쁘게 어머니를 뵈러 다녔습니다.
이렇게 일 다 놓고 한가하게, 어머니 곁에서 동무 해 드릴 수도 있었는데,
너무나 미련해서 그랬습니다.
의식이 사라져가는 그 순간들, 사이사이, 얼마나 그리운 얼굴을 찾으셨을까...
어쩐지 저 강렬한 붉은 꽃이 어머니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