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큰시누님

torana3 2014. 12. 8. 09:03

귀촌에 대한 꿈이 여러가지로 고려해 본 바, 쉽게 진행되지는 않을 것 같아

그 호들갑은 잠시 접었지만, 근래들어 고향을 가보고 싶은 충동이 자주 들었던 터에

큰 시누님이 김장을 다 해놓았으니 가져가라는 전갈을 보내셨습니다.

 

아기때 몇 명 놓치고 남은 칠남매중에 맨 위시라, 70도 중반이 넘으셨습니다만,

아직도 시골 집에서 천평가까운 울안 에 작은 농사를 직접하십니다.

 

어머니는 바깥 농사를 지으시느라 어린 동생들을 먹이고 씻기는 것이 다 이 누님의 역활이었답니다.

남편이 초등학교 입학할 무렵, 산넘어 동네로 시집을 가시고, 그야말로 "그리운 누이" 이미지 이십니다.

큰 딸 답게 집안 대소사를 묵묵히 챙기시고 저 시집와 첫해인가, 상상할 수 없이 많은 손님들이 들이닥치는 큰 일을 치뤘는데,

떡허니 파스 허리에 붙여주시면서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그 엄격하신 표정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만,

만사 공명 정대하시고 아무리 힘든 난관에 한탄한번 하시는 것 못뵈었고,

그 흔한 여자들의 수다나 남 이야기를 내지를 않으셔서, 제 엄살이 부끄럽게 만드시는 인생의 교본 같은 분이십니다.

 

그러나 명랑하고, 씩씩하셔서 무서운 줄 몰랐습니다.

저희가 마음 놓고 가 해주시는 따뜻한 밥 얻어 먹고, 그 정갈한 집 거실에서 쉬다 오기도 하는 어머니 대신이십니다.

 

그래도 미안한 마음에 대개는 식사 준비 마시라고 끼니 넘겨 가는대도, 싹 무시하고

집에서 기르는 암탉을 직접 잡아서 온갖 재료넣고 삶아 놓으셨습니다.

남편은 옛날 어머니에게 하듯, ' 마누라 등쌀에 힘들어 죽겠다"고 능청부리면,

그러면 어머니가 그러신것 처럼 똑같이 실없는 소리 한다고 야단치고, 제 칭찬을 늘어 놓으시면,

저는  큭큭거리면서 고소해 합니다.

 

김장김치만 다섯통에, 밤, 대추,홍시감, 시래기 말린것, 무우 말린것( 티브이에서 보았다고 튀겨 물끓여 먹으면 좋다고 종이장 처럼 얇게 썰어 말려놓으신것)

몇가지 반찬에 양념, 무우, 배추 까지, 그러고도, 갈무리해둔 고구마가 상한것 같아 못 주는 것이 안타까워 몇번을 말씀 하십니다.

 

돌아오는길, 역시 이제는 황혼에 비슷하게 접어 드는 우리는,

그 바지런한 누님의 신산했던 삶을 , 순하기 그지없는 고모부님의 말없는 환대를 이야기하면서,

더이상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아픈 일들은 만들지 말자고, 다짐합니다.

 

그런데 자꾸 속절없이 눈물이 납니다.

 

 

 

 

 

남쪽에는 눈이 많이 왔습니다, 흔한 풍경인데 왜 그리 아름 답게 느껴지는지,

남편은 저 눈 밑에 스며있는 힘든 노동을 느낀다면서 다시 아버지를 추억합니다.

 

 

 이 넓은 땅을 마치 손바닥안 인것 처럼, 다 다스리십니다.

 

 

형님의 집 바로 뒤에 있는 방죽입니다.

아, 아이들이 큰 고모집에 놀러오면 즐겨 놀러가던 곳,, 그래서 눈물이 났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