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ddhist

18. 그렇게 생각하면 되겠는가? 能作是念-3

torana3 2014. 6. 19. 11:00

금강경을 사경하고있습니다.

몇년전에도 여러차례 사경을 했지만은, 해석에 대한 공부없이 그냥  무작정 써내려간적이 여러번

- 그게 기도가 된다고 해서..-  그래서 처음 보는 듯한 글귀가 많습니다.

 

 난해한 말들입니다.

다빈치 코드나 장미의 이름처럼, 또는 중국의 무협지에서 고수들이 득도를 할 수 있는 도구로 전해내려오는 , 신비한 파워를 지닌 秘書처럼

숨겨진 암호를 해독해야 할 것같은 퀘스트를 던지는 듯, 마치.

그러나 저는 날 것 그대로, 원음이, 좋습니다. 현학적 어투의 설명들이 좀 피곤하며 그대로 들여다 보면

그 뜻이 명징하게 다가 올 듯해서, 그냥 베낍니다.

아니면, 2500년전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정신현상을 설명하는 방식은, 단순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다 알아 들었을 듯합니다.  궤변인가요??

 

그런데 간혹 어떤 말들은 걸립니다. 무슨 뜻일까?

 能作是念

수보리에게 부처님이 깨달음의 단계를  말해 주시는 장면입니다.

수다원( 흐름에 든 자 ,입문의 과), 사다함( 한번 갔다오는 자) 아나함( 돌아오지 않는자) 아라한( 어떤법도 없는자) 라고

의인화하며 설명하는데, 그 질문에 붙여, 能作是念 을 반복 합니다.

 

생각을 일으키면 되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면 되겠는가?

그게 아니다 라는 대답이 이어집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이름일 뿐이다. 도를 이루었다고 하는 생각 조차 없다를 유도하기 위한...

 

우리가 살아가는데는 그 이름을 얻는 단계까지가 보통입니다. 그게 세속의 이름이든, 그를 초월하는 경지의 이름이든,

거기까지는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다시 옮겨가는 , 그 헤아릴 수 없는, 언어적 설명의 이후...는?

 

엘리자베스 길버트가 약을 안먹기로 결심하면서 우울, 고독감과 싸우고 있습니다.

한가지 방법으로, 그가 경험했던 내면의 소리와 대화를 나눕니다.  - 이것이 조현증(schizo.) 의 증상이 아닐 까 잠시 걱정을 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신에 다가가는, 구루, 나를 통해서 나의 언어로 해석이 되는, 데레사 수녀가 말한 응답 Locution, 나의  Highest Self...

로 자신의 영적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그 대화를 글로 적습니다.

그러나 분노와 슬픔이 휘몰아 칠 때는  " 난 당신 따위는 믿지 않아!" 라고 한 장 가득 채울 때도 있습니다.

그녀의 낙관적 유머가 등장합니다 " 지금 누구에게 이야기 하는 거야?'  그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합니다.

 

그 날 로마에서 쓴 글입니다.

" 내가 여기 있다, 난 너를 사랑한다, 밤 새 울어도 괜찮아, 계속 네 곁에 있을게, 약을 다시 먹고 싶다면 그렇게 해, 그래도 여전히 너를 사랑할거야,

약을 안먹겠다면  그래도 좋아 네가 내 사랑을 잃을 일은 없어, 내가 이세상을 떠날 때까지 나는  너를 보호할 거야,

 만약에 저세상에 가서라도 계속해서 너를 보살필게,  난 우울보다 강하고, 고독보다 용감해, 어떤 것도 나를 지치게 만들지는 못해"

그렇게 적은 노트를 가슴에 품고 잠이 들었으며, 약도 먹지 않았고 슬그머니 두 놈은 일어나서 가버렸다.  우울이 남긴 연기 냄새가  남아 있었지만....

 

이것도 저것도 아니다,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된다...

 

 

     표현이 잘 되지는 않았는데, 이마에 제3의 눈을 박아 넣었습니다.  육안이 아닌, 지혜, 영적으로 觀 하는 눈을 의미 합니다.